"순수함을 잃는 게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것."
이 문장 하나가 마음에 깊이 박힌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고,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말. 나는 왜 지금까지 설레임을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그 감정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말해줄 줄은 몰랐다.
나이가 들면 잃어버리는 감정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것 40대 후반이 되고, 세상과 부딪히고, 수많은 일들을 겪다보니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느끼기 힘든 감정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 감정이 뭘까?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설레임"이었다. 맞았다. 나도 그게 정답일 것 같았다.
내 삶 속에서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감정 중 하나가 바로 그 시절의, 매일매일의 설레임이기 때문이다.
집전화로 나누던 설레임
10대 후반,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집전화로 좋아하던 여자애와 매일 밤마다 통화하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때는 저녁이 되면 온종일 기다렸던 그 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만으로 설레였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하나에 가슴이 뛰었다.
물론 전화요금이 너무 나와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쉽게 헤어지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게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다.
그 나이였기에 가능했던 감정이다. 지금의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그때처럼 무조건적이고 이유 없는 설레임은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시간과 능력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꼭 다시 한 번 그 시절의 설레임을 느껴보고 싶다.
왜 사람들은 첫사랑을 떠올릴까?
많은 사람들이 ‘설레임’ 하면 ‘첫사랑’을 떠올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첫사랑은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몰랐던 세계’를 열어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눈 마주침 하나, 쪽지 한 장, 스쳐 지나가는 손끝 하나에도 심장이 요동쳤다.
그 감정은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아팠고, 너무 뜨거워서 오래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찬란하게 빛난다.
첫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다
꼭 첫사랑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 ‘젊은 시절의 연애 초반’이야말로 설레임을 가장 오랫동안 느낄 수 있었던 시기다.
매일매일이 특별했고, 저녁이면 또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 감정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그 시기의 공기였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될 때, 썸을 타고, 눈빛을 주고받고, 서로를 알아가는 모든 순간이 설렘이었다.
그리고 그 설렘은 관계가 익숙해지고, 사랑이 안정감으로 바뀌면서 서서히 사라지곤 했다.
반복될수록 사라지는 감정
결혼을 하게 되면, 혹은 결혼하지 않더라도 연애가 반복되면, 그 설레임은 점점 느끼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설레임은 자주 느낀다고 풍성해지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주 반복되면, 감정은 무뎌지고, 깊이가 얕아지고, 피로감만 쌓인다.
설레임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
설레임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단지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감각이 무뎌진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껍질을 벗기는 건, 때때로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다.
🌱 예전엔 벚꽃이 설레었고,
지금은 아이가 줍는 민들레가 설레고
🔥 예전엔 첫 키스가 떨렸고,
지금은 퇴근길에 창문 열고 듣는 옛 노래가 뭔가 먹먹해
💬 예전엔 하루 종일 기다리는 전화 한 통이 있었고,
지금은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주는 사람이 고마워
이 문장은 내가 쓴 게 아니지만, 내가 살면서 느껴온 수많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말이 멋지고, 문장이 멋지고, 이 말을 한 그 사람마저도 참 멋지다.
설레임은 '처음'이라는 감정
결국 설레임은 ‘처음’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감정이다.
첫 문자, 첫 만남, 첫 키스, 첫 싸움, 첫 화해…
이 모든 ‘처음’들이 설레임의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처음’은 점점 줄어든다.
모양이 바뀐 감정들
중요한 건, 설레임은 사라진 게 아니라, 모양이 바뀐 것이다.
예전엔 불꽃처럼 확 타올랐지만, 지금은 잔불처럼 은은하게 남아 있다.
쉽게 보이진 않지만, 따뜻하고 오래 간다.
우리는 그 감정을 자주 확인하지 않아서 잃었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지금의 설레임은 다르게 존재한다
지금 이 나이에 우리가 다시 설레는 순간은 드물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이가 “아빠~” 하고 달려오는 순간,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나누는 조용한 대화,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아무 말 없는 눈빛.
그런 순간들 속에 설레임은 여전히 살아 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우리는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설레임을 잃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들이 다른 모양으로, 다른 온도로, 다른 자리에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설레고 싶다면, 우리는 그 감정을 찾아가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조금은 느슨하게, 조금은 덜 기대하며, 하지만 마음을 닫지 않은 채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의 설레임을 잃어버렸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돼.
그건 우리 삶이 깊어졌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 감정은 다시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우리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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