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은 불편하지만, 그 속엔 익숙한 사람들과 나만의 삶의 리듬이 있다.
누수탐지 일을 하며 마주한 노인들의 삶과,
도시 외곽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편안함’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아파트에 살아야 집값이 오른다.”
“도시는 편하고, 시골은 불편하지.”
“단독주택은 손이 많이 가고, 관리가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아파트는 관리가 쉽고, 시세도 잘 오르고,
편의시설도 풍부하며 여러모로 효율적인 주거형태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도시 외곽의 단독주택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왜일까.
단순히 단독주택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곳에서의 삶이 나에게 더 잘 맞기 때문이다.
🏡 내게 맞는 속도, 내게 맞는 거리
도시 외곽의 단독주택에 살면
시내처럼 사람에 치이지는 않지만, 시골처럼 멀지도 않다.
물론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모임이 있을 땐
시내로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돌아올 때는 대중교통도 애매해서
“그냥 안 나갈까…” 싶을 때도 많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람 만나는 일은 줄었고,
대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주말이면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동네 작은 공원에 가면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
아파트처럼 정해진 놀이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고, 이웃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그게 나에게는 더 진짜 같은 삶이다.
👨👩👧👦 조카들이 놀러 오는 날의 풍경
가끔 누나네 가족이 놀러 오면, 조카들이 집 안팎을 뛰어다닌다.
초등학생인 조카들이 마당에서 소리치고, 현관을 열고 나갔다가 들어오고,
뛰고, 굴러다니고, 깔깔 웃는다.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
조카들은 아파트에 살아서 집에서는 조금만 뛰어도 엄마한테 혼난다고 한다.
누나도 “애들이 조금만 빨리 걷기만 해도 아랫집에서 연락 와서 너무 스트레스야…” 라고 털어놓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런 일상이 얼마나 당연한 건데, 지금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구나.
단독주택에선 아이들이 뛰어도, 소리를 질러도, 누군가 눈치 줄 사람 없다.
그저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답게 놀 뿐이다.
그걸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 일하며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선택
나는 배관을 수리하는 일을 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집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 도시에서 시골로 간 사람들
은퇴 후 조용한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로 이사한 분들을 본다.
처음엔 좋다.
공기 좋고, 텃밭 있고, 마당 있고, 조용하고…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분들이 있다.
몸이 불편해지고, 병원이 멀고,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치우기도 힘들고, 갑자기 열이 나도 차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그렇게 '자연'이 '불편함'으로 변하는 순간이 온다.
🧓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어르신들
반대로, 평생 시골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이
병원 가까운 곳, 자식들 근처로 이사 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도시 아파트에 들어와
몸은 편해도 마음은 점점 외로워진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아는 사람 없고,
현관문 밖은 온통 낯선 골목과 자동차뿐.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곳이 없고,
하루 종일 TV만 켜두는 날들이 반복된다.
🌱 진짜 편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편안함이란 ‘편리함’과는 조금 다른 것 아닐까?
어떤 이에게는
불편했지만 익숙한 시골의 일상과 이웃들이
더 큰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진짜 편안함은 익숙한 관계, 익숙한 공간, 익숙한 리듬에서 온다.
그리고 나에게 그 익숙함은 지금 내가 사는
도시 외곽의 단독주택에 있다.
🪴 단독주택이라는 삶의 방식
물론 단독주택은 아파트처럼 편하진 않다.
계절마다 점검할 것도 많고, 손볼 것도 은근히 많다.
여름이면 벌레가 많아지고, 겨울이면 보일러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
눈이 많이 오면 우리집 앞 마당은 물론, 골목까지 내가 직접 치워야 한다.
어떤 날은 앞집 아저씨가 우리 집 앞까지 눈을 밀어주고,
다음 날엔 내가 앞집, 옆집까지 눈을 치운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도와주는 이웃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집을 스스로 돌본다는 감각은 불편함과 함께 오는 따뜻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이 누구인지 알고,
동네 아이들 이름을 알고,
공원에서 인사할 수 있는 삶은
그 어떤 고급 아파트도 줄 수 없는 삶의 질이다.
참고로 여긴 시골은 아니고,
밤에도 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별 대신 사람을 보고,
고요한 밤 대신 아이의 웃음소리와 이웃의 인사를 듣는다.
그게 내게는 더 밝고 따뜻한 빛이다.
🧭 앞으로도 나는, 이 방식으로 살고 싶다
‘좋은 집’이라는 말엔 숫자와 면적, 위치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집은,
숨이 편하고, 마음이 열리고, 사람이 보이는 집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
그리고 이 느리고 익숙한 삶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다.
'생각의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레임과 순수함,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들 (12) | 2025.06.15 |
---|---|
시간이 빨라졌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 나의 시간은 지금 시속 몇 km일까 (4) | 2025.06.14 |
불교의 윤회 이야기-나는 왜 다시 태어나는가 (2) | 2025.06.08 |
데자뷰와 예지몽 사이 –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2) | 2025.06.07 |
박정희 시대를 돌아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6) | 2025.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