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이 힘든 삶, 그래도 나답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익숙한 것들을 붙잡고 있다.
낡은 아이폰, 오래된 자동차처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정,
변화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하는 천천히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
나는 뭐든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람…
다들 무언가를 빠르게 배우고, 적응하고, 바꾸는 시대지만
나는 늘 한 발 느리다.
무언가를 처음 배우는 게 어렵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느낄 즈음엔
이미 세상은 그 다음으로 넘어가 있다.
이런 성격이 늘 답답하고 미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왜 나는 이토록 변화에 둔할까,
왜 남들처럼 새 것을 반갑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나는 단순히 느린 게 아니라,
한 번 정이 들면 그걸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낡은 물건이 나에게 말을 걸 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아이폰도 벌써 7년째다.
속도는 느려졌고, 화면도 여러번 깨졌다.
앱 하나 켜려면 로딩이 길고, 배터리는 금방 닳는다.
새로운 모델이 좋다는건 당연히 알고 있다.
나도 바꾸자고 결심했던 순간이 수도 없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다.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도 여전히 이 낡은 폰을 쥐고 있다.
왜일까.
충분히 새것을 살만한 여유도 있다.
성능이 좋아지면 더 편할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 아이폰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내 기억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안에 남아 있는 사진, 메모,
몇 년 동안 쌓인 내 손의 움직임까지
모든 게 익숙하고 편안하다.
마치 오래된 친구 같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벌써 10년 넘게 함께 달린 차.
가끔 이상한 소리를 내고,
신차들에 비하면 조용하지도 않고, 스마트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 차를 탈 땐
묘한 안정감과 친밀함이 느껴진다.
시동을 걸면 나는 소리마저
“잘 있었어?”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새 차로 바꾸면 얼마나 편한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보다
내가 놓지 못하는 건 정이 들어버린 시간들이다.
익숙함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
요즘 세상은 빠르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유행은 하루아침에 바뀌고,
사람들은 그런 흐름을 좇느라 늘 분주하다.
그 속에서 나는 종종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말,
어느 순간부터 무겁게 마음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변화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변화에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적응하고,
나는 천천히 적응한다.
누군가는 새 것을 향해 전진하고,
나는 익숙한 것을 오래 껴안는다.
그게 꼭 틀린 방식은 아니지 않을까.
익숙한 것은 나에게 울타리 같았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내가 나로 남을 수 있게 도와주는 둥지처럼.
느린 사람도 괜찮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너무 미련한 걸까?”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사람일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단지 정이 많은 사람이고,
무언가와 관계를 맺으면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가끔은 그 성격이 불편하지만,
그런데도 이 마음이 싫진 않다.
정든 것들을 오래 안고 있는 내가
조금은 따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나는 내 속도대로,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게 나의 방식이고,
내가 세상과 맺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
변화에 늘 망설이는 사람.
그런 나도,
그런 우리도
충분히 괜찮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