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내리사랑 - 본능과 후회에 관한 생각

서툰키스 2025. 5. 1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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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건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내리사랑”이라고.
그 말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말 안엔 슬픔과 미안함,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할아버지 엄마 아기가 함께 있는 장면

📍 사랑의 방향

 

나는 자식을 사랑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릿했다.
뜨거운 죽을 불면서도,
작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도,
저절로 마음이 흘러갔다.
그건 노력해서 생긴 감정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부모님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진 못했다.
물론 감사했고, 존경했고, 때로는 울컥했다.
그러나 내가 자식에게 느끼는 이 끓어오르는 사랑과는 분명히 달랐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게 더 괴로웠다.

 


 

🧬 진화는 아래를 먼저 바라본다

 

진화심리학은 말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즉, 우리는 나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존재,
자식에게 가장 강한 애착을 느끼도록 진화해왔다고.

그러니 부모를 자식처럼 사랑할 수 없는 건 본능이다.
자연은 위를 돌아보지 않는다.
생명을 앞으로 보내고, 다음 세대를 돌보는 것에만 몰두한다.

이 진실은 잔인하게 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었다.
나는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인간일 뿐이었다.

 


 

🙏 되돌릴 수 없는 감정

 

나는 부모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기였고, 너무 어려서 고마운 줄 몰랐다.
그들은 나를 안고, 먹이고, 재우고, 아팠고, 웃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사랑을 돌려줄 수 있을 즈음에는,
그들은 이미 지치고 늙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자식에게 퍼붓는 사랑을
부모는 한때 나에게 그보다 더 깊게 쏟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효의 미안함을 사랑으로 채우지 못한 채,
빈 의자 앞에 서서 눈물을 삼킨다.

 


 

⏳ 사랑이 너무 늦게 자랄 때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우리는 그 사랑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 무게는 말하지 않던 잔소리 속에 있었고,
내 이름을 부르던 굳은 목소리 속에 있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그때는 그렇게 표현하지 못했을까.
왜 그 사랑에 그만큼의 사랑으로 답하지 못했을까.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본능이고,
부모를 사랑하는 건 의지다.

그리고 나는 그 의지를 너무 늦게 배웠다.

 


 

🌿 나는 이제 사랑을 거슬러 올리기로 했다

 

나는 자식을 향한 사랑에는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부모를 향한 사랑은 이제 죄책감과 싸우며 흘러간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속으로 사랑을 보낸다.
사랑은 더디게 도착했고,

그 사랑은 당신이 계실 때보다 내가 더 자란 지금에서야 자라난다.

 


 

💭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언젠가 내 아이도 나처럼 느낄 것이다.
부모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넌 네 아이를 사랑하면 돼.
나는 그걸로 충분해.”

 

이게 바로 내리사랑이니까.
되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은 사랑.
기억되지 않아도 충분한 사랑.
그러니까 우리는 자식에게 쏟아붓고, 부모에게는 눈물로 남는다.

 


 

📌 마무리하며

 

사랑은 본능이지만, 때로는 너무 늦게 자라나는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이 떠난 후에야
그 사랑을 깨닫고,
그 부재를 통해 사랑의 깊이를 헤아린다.

내리사랑이라는 말 안에는
한없이 아름답고,
무겁고,
인간적인 진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부모를 사랑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더 조용히, 더 의식적으로
그 사랑을 거슬러 올려야 한다.
지금, 아직 늦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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